얼마나 배웠는지 보다 얼마나 배우려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배웠는가는 물론 중요하다. 충분히 나이가 들어 사회적 역할을 해낼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운 것이 부족하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잘못인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잘못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얼마나 배웠는가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배우지 못한 것이 잘못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도 대부분 배움을 함께 해야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젊은 나이에는 얼마나 능동적으로 배우려 하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얼마나 배우려 하는지 보다는 조금이라도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이 많고 스스로의 가치관이 언제까지나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이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21세기가 들어서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2023년 AI의 등장으로 더더욱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과장을 보태 하루 앞날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앞으로 일 년 사이에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던 지식들이 모두 쓸모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의 가치관을 평생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마치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 배운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은 앞으로도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가질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배우는 것의 효력 또한 배워야만 알 수 있는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면 앞으로도 기회를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경우는 지금까지 많이 배워왔고 앞으로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다. 두 번째는 많이 배웠지만 이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며, 세 번째는 배운 게 없지만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경우다. 물론 배운 것도 없으며 배우려는 마음가짐도 없는 경우가 최악의 경우다.

많이 배웠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배운데 없지만 배우려는 사람에 대한 순위를 어떻게 매길까 잠시 고민했는데, 이미 배운 경우를 상위로 올린 이유는 그 어떤 많이 배운 사람도 배우지 못한 시절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배운 상태로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 모두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모든 많이 배우고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배운 적 없지만 많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인 시기를 거쳐 왔다. 배운 적 없지만 많이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미래에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배움을 언제까지나 게을리하지 않는 것과 이제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23. 7. 8.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