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가 불행과 이어진다?
최근 수백 년간 수많은 혁명들과 운동들을 반복해 오면서 인간의 생활 양상은 대체로 개인이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21세기에 들며 정보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단칸방에서 전 세계의 80억 인구와 소통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조달 받으며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선택지가 추가로 생성되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더 큰 자유 속에서 더 거대한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전 세계는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개인 단위로 분리해야만 했으며, 이를 위한 기술도 코로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속도로 발전했다.
덕분에 인간을 개인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진 것 같다. 사람들의 정신 질환 지수도 높아지고 행복 지수도 낮아지고 있다.
개인화되는 경향이 높은 지역, 국가일수록, 한 마디로 선진국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불행해지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낮고, 이웃 나라인 일본의 행복 지수도 높은 편으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미국, 캐나다나 호주, 동아시아권, 유럽권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행복지수이다.
개인주의가 너무 빠르게 확산된 것이 문제?
우리가 기후 문제를 걱정할 때, 기후 문제가 악화되는 속도와 기후 문제를 해결할 기술의 발전 속도를 비교하는 것처럼, 개인화로 인한 사람들의 행복 지수 감소와 이를 뒷받침할 정신 질환 테라피 프로그램의 수준이 발전하는 속도를 비교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테라피의 수준뿐만 아니라 기득권이나 기존 세대가 얼마나 개인화된 사회에서 아래 세대에 정신 질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잘 전수하는 지도 중요할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온 대한민국, 2023년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대체로 개인이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낮춘 이유가 된 것일지도.
틀에 갇혀 살아갈 자유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것은 억압 속에 있을 때로 대부분 제한된다. 끊임없이 자유를 찾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 자유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된 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스스로를 틀 속에 가두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틀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 스스로가 만들어 내었던 틀이었다. 진정한 자유 속에서 말이다.
근본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은 대부분 스스로가 선택한 길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속해 있는 국적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를 내놓는 만큼 또 다른 자유를 취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켜가며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를 다 해내고,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혹자는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언제나 일정한 자유를 빼앗긴 상태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빼앗겼다기보다는 다른 무엇과 거래한 상태로 살아간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그러한 틀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수천 수만 년 전 국가와 법이 형성되기 전의 모습처럼 야만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만일 국가와 법이 없다면 우리는 야생의 고릴라나 침팬지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소수의 우두머리 수컷이 대부분의 암컷을 거느리고 도태된 자들은 자연선택법에 의하여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필자는 그런 삶보다는 지금의 삶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며 대다수의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진화의 특정한 방향성이 없듯, 어쩌면 인간의 생활 양상이 진화해온 것도 특정한 방향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 현재 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인간은 자유를 향해서 수천 년의 역사를 달려온 것만 같다.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 결국 태초의 인간은 가장 광활한 자유를 누리며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를 억압하고 틀 속에 가두었으며, 다시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려고 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그러한 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미 자유롭다고 생각되는 나라던 반대이던 어디에서나 인간은 자유를 꿈꾸고 그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고 실천하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말이다.
사실 인간은 자유보다 '이것'을 더 갈구한다
어쩌면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는 것도, 틀을 갈구하는 것도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사실 자연선택이 '자유'를 선택할 이유가 특별하게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더 많은 자유를 가졌다고 해서 생존 능력이 과연 증가할까?
진화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고 새롭고 더 나아 보이는 선택지를 언제나 찾도록 설계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21세기는 태초의 자유로부터 한 번 틀에 갇힌 다음, 다시 자유를 되찾은 상태인 것이다. 어쩌면 되찾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르고.
사실 자연선택 이론 하에서 생존 능력의 향상 측면으로 본다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선택지를 찾으려고 하는 습성은 매우 도움이 된다.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개체는 매우 빠르게 적응할 것이고, 실패한 개체는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인간 스스로 진화를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 특성이 인간에게 매우 뛰어난 적응력을 선물해 주었을지도.
일단은 최근 수백 년간의 역사를 보면 틀을 의미하는 제도들이 현재보다는 대체로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신분제가 되겠다.
일단 지금 세상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는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자유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 거의 없다. 다만 자본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몇몇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국가 주도의 복지를 대폭 확대한 신자유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물론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은 옳은 선택 쪽으로 흘러가지도 않고. 정확히 그 반대일 것이다. 흘러가진 선택지가 옳아지는 방향이다.
2023. 8. 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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