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저의 <국가란 무엇인가>
저자는 수많은 군중들이 공통된 질서 아래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함께 두려워하는 거대한 힘이 그들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법치주의란 사전적으로는 국가에서 행하는 행정이 법에 의거하여 이뤄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국가가 법을 근거로 그 힘을 마구 휘두른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책에서 주장하는 법치주의는 오히려 국가의 횡포를 막는 울타리로 표현한다.
국가의 권력이 두려운 형태로 드러나고 그들의 무력을 국민에게 행사하는 것은 국가를 이루기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오히려 그것을 막았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법치주의는 국가의 과도한 횡포를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하므로 국민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교권 추락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만하다. 수십 년 전 대한민국의 교권은 하늘을 찔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지금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교권이 높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고, 실제로 겪었던 세대들의 정확한 입장을 나로서 이해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어쩌면 그들은 그것이 자연스러워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던 현재의 교권은 과거와 비교하여 많이 논의되고는 하는데, 이 교권이 추락되고 나서 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인생의 질서' 밖으로 나가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교권의 추락이 학생들을 질서 밖으로 조금씩 내몰게 되고, 질서 밖으로 나간 학생의 입장에서는 교권이 높아 보일 리 없으므로 악순환의 고리를 타게 될 것이다. 그 시작은 분명 미미했을 것이다.
교권을 국가의 권력과 비교해 보았을 때 유사한 점을 여럿 볼 수 있는데, 국가가 국민들을 상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력을 휘두를 때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처럼, 교사 또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의 권력을 휘둘러 줘야 적절한 교육 또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 정부는 민주주의에 의거하여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이 국민투표로 선출되는데, 반대로 교사는 다수결의 의견으로 의결하기가 매우 곤란해 보인다는 것이다.
국회가 높이 있다면 국민은 낮은 위치에서 그들이 받게 될 정치를 진행할 인물들을 선거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에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가 있지만 교사의 경우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교사 자체가 투표 등을 통해서 뽑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국민, 즉 학생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미 교사가 이미 임용된 이후에 교육을 진행하면서 피드백을 받는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 대개 실질적으로 교육을 받는 대상인 학생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로부터 이의 제기를 받는다.
따라서 이렇게 비공식적인 방법이 다수결에 의해 진행된다면, 교사의 행동은 주로 학생이 아닌 학부모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이며, 학부모들은 대개 전체적인 그림이나 많은 아이들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자녀의 당장의 안위를 우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악화될 수는 있어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미성년자들인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행하기에도 어려움은 있다.
결국에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데, 하나는 국가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 강제로 학교에 적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받은 교육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가르치는 교육과 그 수준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가정교육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 세대의 수준이 바뀌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만약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법을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학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하면 국가도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기가 곤란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교권에 대한 논란이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결국 학부모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가 귀결되는데, 현 세대의 학부모들은 20세기 말 학창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그 시절의 가정교육과 공교육을 따져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두 세대 정도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전쟁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20세기 중반의 대한민국과 현재 2023년 대한민국의 위치는 서로 분리해서 보았을 때 전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격변한 경우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국가의 권력과 교권이 두려울 정도로 강력하게 느껴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학부모 혹은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크게 반발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를 거쳐온 지금의 학부모들이 자녀를 낳고 그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대한민국 그 어느 시대보다 보장되고 마음껏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유산이 갑작스레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흘러들어가고 있는 중이고 그것에 대한 부작용이 현재 논란되고 있는 교권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3. 9. 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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