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 - 파울로 코엘료

2025년 1월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걷고 있던 어느 날 알베르게에서 누군가 두고 간 이 책을 발견. 걷기 시작한 지 열흘 정도가 흘러가며 순례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던 도중 내 눈을 사로잡은 이 책은 처음의 몇 문장만으로 나의 마음속까지 침투해 버렸다. 

 

저자인 파울로 코엘료는 '람'이라는 종교의 마스터가 되는 의식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 마스터는 그에게 검(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필수적인 물품으로 추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순례길을 걸어야만 한다고 한다. 안내자 한명과 함께 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서 저자 경험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서술한 책이다.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내게 순례길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까지 심오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다. 순례라는 행위에 대해 매너리즘까지 느끼게 된 것은 상상력의 부족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걷는 게 목적이라면 헬스장의 러닝 머신 위에서 하루 종일 걸으면 될 것인데 무슨 이유로 한국을 떠나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고생하는가? 단지 걷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닌 건 확실한데 무슨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가?

 

이번 순례의 목적은 목적지가 아니라 길 위에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목적지'라는 말이 무색할 수도 있겠다. 그 곳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때로는 함께하고 때로는 홀로, 육신과 다투고 정신과 협력하여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장면이다. 극단적으로는 Santiago de Compostela 하루 전에 머물게 되는 도시인 O Pedrouzo에서 여정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제는 순례길을 완주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정말로 그만두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