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과 성차별

요즘 <사피엔스>를 읽고있다.

얼마전 베스트셀러 판매대에서 발견한 후 한눈에 반한 책이다.

이 책을 읽던 중 기억에 남는 단락을 주제로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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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질서다.

문자 없이 구어로만 유지되는 집단은 약 150명이 한계이다. 그 이상의 집단은 자연적으로 와해되고 분열된다.

문자와 수를 발명하면서 인간은 질서를 이용해 더 큰 집단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도시를 건설하게된다.

하지만 이 질서는 필연적으로 위계를 내포한다.

위계는 문화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신분제, 인종차별, 성차별이 있다.

신분제와 인종차별의 발단은 우연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연히 사회문화로 자리잡아 고착되었다.

다만 성차별의 기원은 알 수 없다.

인종차별은 16-18세기 유럽 정복자들이 아프리카인 노예를 미국으로 수입한 것으로 발단한다.

이들은 유전적으로 많은 질병에 면역이 있었다. 그러나 이 유전적 우월성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열등성으로 번역되었다. 유럽인들보다 열대 기후에 잘 적응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유럽인 주인의 노예가 되었다.

이런 상황 탓에, 미국 사회는 유럽계 백인 카스트와 아프리카계 흑인 카스트로 나뉠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특정 인종이나 출신을 노예로 쓰는 이유를 오직 경제적 유리함 이라고 말하고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가 도입되었다. 이는 오랜시간 유지되면서 사회문화에 뿌리를 내렸다.

이후 19세기 초 대영제국은 노예제도를 폐지하였다.

하지만 노예가 해방된 뒤에도 인종차별의 신화는 유지되었다. 오히려 사회 관습에 의해 악순환에 빠지고 있었다.

약 2백년간 지속된 노예제로 인해 대부분의 흑인 가정은 백인 가정보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았다. 낮은 교육수준에서 자란 흑인 아이는 좋은 직업을 가질 기회가 적었다. 그의 자녀도 상황은 같았다.

시간이 흐른다.

이렇게 문화적 편견이 생겼다. 심지어 흑인들조차 그들에 대한 편견을 믿었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객관적으로 지능이 낮고 폭력성이 높고 개인적 청결에 관심이 적다고 말이다. 이렇게 악순환은 지속되었다.

이를 보고 현대의 성차별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느꼈다.

여기서 나는 성별에 따른 능력차를 모른다고 하겠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분명 있다. 대표적으로 근력이다. 다만 그 차이가 사회적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지는 알 수가 없다는 의견이다.

성 2호의 한 나라에 왔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성차별이 존재해왔다. 원인은 알 수 없다.

남성우월주의에 의해 기업은 여직원을 꺼린다. 위와 같은 이유로 그들은 여직원의 일률이 낮다는 신화를 만든다.

한 기업은 남성위주로 이루어져있다. 지원자인 남자와 여자의 이력서는 동일하다. 기업은 남자를 뽑는다.

여자는 사회로부터 일률이 낮다는 편견을 받고있다. 업무중 관계없는 일을 하고, 업무지속성이 적다는 편견을 받고있다. 그녀가 생물학적으로 일률이 낮은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도 그 편견을 믿는다. 업무중 사적 메신저, 쇼핑을 한다. 여자는 원래 그렇다고 믿는다. 사회가 신화를 가르친 것이다. 시간이 지나 기업은 여자에 대해 더 큰 편견을 갖는다. 바로 이런 악순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차별을 잘못이라 가르친다. 사람들은 성차별적 발언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고 또 그것을 고치려한다.

이는 인종차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무지한 것이고, 배척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성차별 또한 전세계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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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에 대한 글을 읽고 성차별과 닮지 않았는가 하여 머릿속 생각을 끄집어내보았다. 이 주제로 누군가와 논쟁할 목적은 없다.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

학문을 열심히 익혀 언젠가 이 주제에 관해 의견을 가지게 되면, 누군가와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것은 아주 아름다울 것이다.

 

 

 

2021. 11. 6. 16:33